조잘조잘

제가 다음 날 눈을 뜨면 죽어있게 해주세요.

sou_r.s 2025. 3. 10. 23:48

2025년 3월 10일의 기록.

10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밤,

귀에 푹 눌러쓴 헤드셋에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타이핑 소리와 룸메의 스탠드 불빛이 사란히 비추어온다. 

 

방의 히터는 따뜻하고도 건조한 바람을 윙윙 내보내고

이불 속은 이제 따끈따끈해졌다.

걱정될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자꾸만 겁이 난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 지 너무 무섭다.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누군갈 좋아하는 것이, 누군가를 선망하고, 존경하고, 기대하는 것이,

누군가 내게 기대를 거는 것이, 칭찬을 받는 것이, 험담을 듣는 것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요즘 자꾸만 이런 상상을 한다. 

밤에 누군가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면서, 너무 너무 보고싶다고 외치는 상상을 한다. 

그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일 때도 있고, 학교 선후배, 엄마 아빠, 그 외 다수.

온갖 사람들이 내 상상 속에서 내가 울며 전화하는 것을 받고 어떨 지 상상을 한다. 

 

이젠 힘들다고, 그만 하고싶다고, 울부짖는 내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지 않다. 

 

미래의 도전을 두려워하는 것 만큼 멍청한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이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주저앉아 있는 멍청이.

다시 일어나면 다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에 일어날 시도도 하지 않는 멍청이.

 

우울하다. 

왜 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을 만큼 무기력해졌다. 

이유에 대해 생각할 방법도 잊을 만큼 바보가 되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않는 모지리가 되었다. 

 

어떡하지.

나는 내가 너무 싫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겁에만 질려 벌벌 떠는 이런 멍청이가 있나. 

이럴거면 그냥 집 근처 고등학교 가서 적당한 지방대나 들어가서 적당히 살지 그랬어.

왜 나대서 개발자가 하고싶다고 설치고, 개발은 안하고 디자인이나 하고, 교우관계는 다 분탕 쳐놓고, 

 

그래놓고 내가 나를 미워하는 건 또 싫어한다. 

근데 남을 미워하는 것보단 낫다. 

진짜 모순적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그냥,

하.

 

과거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묻고 네 잘못이라고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언제 이렇게 되버린 걸까. 

난 언제 이렇게 멍청이 겁쟁이가 되어버린 걸까.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 안해도 되게. 

 

그럼 엄마 아빠 오빠는 많이 울겠지. 

강은이도 울 것 같고, 시우는 모르겠다. 

후배들도 많이 슬퍼해줄까? 잘은 모르겠다. 

선배들 중 오실 분은 얼마 없을 것 같다. 

나는 선배들을 정말 좋아했는데, 내 장례식에는 안 오셨으면 좋겠다. 

아 그런 후배가 있었지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그냥 그렇게 날 잊어주셨으면.

 

그냥 모두가 날 조용히 잊어줬으면 좋겠다. 

 

울고 있다. 지금.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해줄 것 같은 사람이 그래도 아예 없진 않다. 

다행이다. 

이제는 죽어도 슬프진 않을 것 같다. 

 

내일 아침 정신을 차렸더니 죽어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더 이상 아무런 눈물도 흘리지 않게. 

더 이상 아무에게도 기대고 기대하지 않게.